‘멍드는 배우 삼코’ 편이 싸이뉴스에 실리고 나서 격투계 관계자들로부터 ‘왜 한국선수들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더니 뜬금없이 외국선수가 왜 나오느냐?’며 항의 아닌 항의를 받았다.물론 안부 차 전화통화하던 몇 명으로 부터 들은 핀잔 아닌 핀잔이었지만. 필자는 성격장애가 있다. 뭔가 하나 숙제가 생기면 그것을 해결할 때까지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 아주 치명적인 정신병(?)이다.
삼코의 이야기도 갑자기 떠오른 이야기이고 언젠가 한번 써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 시점부터 계속해서 떠오르는 삼코를 머릿속에서 지울 수는 없었다. 또한 필자의 손은 이미 삼코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그렇게 삼코의 이야기가 시작 되었고 삼코가 아닌 다른 선수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뤄졌던 것이다.
-멍드는 배우 下(삼코 편)-
경기 후 며칠간 삼코와 신비 태웅 등의 태국인 선수들에게 한국을 소개해주고 관광도 시켜줄 겸 해서 첫 번째로 들린 곳이 롯데월드였다.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사진들 중에 삼코가 회전목마를 타고 즐거워 하는 모습의 유명한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을 찍기 위해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삼코는 생긴 것과 다르게 스릴이 느껴지는 듯한 놀이기구는 모두 거부했다. 더 무서운 것은 없느냐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남삭노이나 신비 태웅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필자가 “내 돈으로 자유이용권을 끊었다. 네가 안 타0면 돈을 날리는 셈이다”라고 말을 해봐도 “그럼 내가 너에게 돈을 주겠다”며 완강히 거부했다.
필자는 약이 올랐다. 어떻게 해서는 삼코를 공포스러운 놀이기구에 꼭 태우고 말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가 눈치를 못 채도록 롤러코스터 앞까지 가는데 성공했다. 이제 잠깐 동안 줄을 선후 삼코를 강제로 태우면 되는 것이었다. 롤러코스터를 타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 앞까지 다가가자 삼코가 눈치를 챘는지 자기는 죽어도 싫다며 빼기 시작했다. 필자는 쌈코를 번쩍 들어 꽉 끌어안고 놔주지 않았다. 천하의 삼코여도 체중 100kg에 키 185cm의 거구인 필자를 때리지 않고 단순히 힘만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삼코는 살려달라며 발버둥을 쳤지만 필자는 “차라리 죽어라” 하며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몇 분간 승강이를 벌이자 결국 삼코와 내가 롤러코스터에 탈 차례가 왔다. 곧 롤러코스터가 도착했고 게이트가 열렸다. 이젠 타기만 하면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롤러코스터에 타기 위해 삼코를 놔주는 순간 그는 뒤도 안 돌아보고 뛰기 시작한다. “돌아와, 삼코!!!”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가 눈앞에서 사라지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0.5초만이었다. 결국 혼자서 롤러코스터를 타며 공포에 소리를 질러야 했다.
바이킹, 후룸라이드, 번지드롭, 롤러코스터 등등 롯데월드에 있던 놀이기구 중 쌈코가 유일하게 즐겼던(?) 놀이기구가 회전목마 하나뿐이다. 그나마도 내가 먼저 시범으로 회전목마를 타며 시범을 보여주고 하나도 안 무섭다는 설명까지 해줘야 했다. 그렇게 오르게 된 회전목마에서 삼코의 천진난만한 미소가 번져 나왔다.
한바탕 놀이공원에서 놀고 난 뒤 당시 필자가 운영하던 상계동 태웅회관의 사무실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었다. 밤이 되어 나이트클럽에 가자고 해도 싫단다. 삼코가 밖에 나가서 놀았던 것은 당시 태웅회관 선수들과 근처 운동장에서 즐겼던 축구말고는 없다. 삼코는 무에타이에 미친 사람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하드에 저장된 무에타이며 K-1이며 동영상만을 볼 뿐이다. K-1을 보며 선수들에 대해서 장점과 단점을 찾아내고 보완해야 하는 부분을 지적한다. 200 경기도 넘게 뛰었다면 지겨울 법도 한데 삼코는 무에타이와 각 선수들을 연구한다.
동영상 중에는 삼코가 일본에서 왼쪽 킥으로만 일본의 챔피언을 KO시킨 장면도 있었다. 이것을 보던 삼코가 눈살을 찌푸린다. 필자는 물었다. “저 경기를 본 많은 사람들이 삼코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어떻게 왼발로만 싸울 생각을 했느냐?” “다른 공격도 다 잘하지 않더냐? 그리고 다리 하나만 가지고 저렇게 차대면 다리가 아프지는 않더냐?” 삼코의 답변은 의외로 단순명료 했다. “저렇게 시합하면 아프다.”
눈을 크게 뜨고 궁금해 하는 필자에게 삼코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 경기가 끝난 후 한 2주 동안 걷지도 못했습니다. 나도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고 똑같은 통증을 느낍니다. 왼쪽다리로 차다가 상대의 팔꿈치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니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내고 제 경기를 보러 옵니다. 제가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내고 경기장을 찾아온 사람들이 기분 좋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기를 하는 시간만큼은 저는 주연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척 연기를 해야 하고 이기고 난 후에는 오버해서 기쁨을 표현해야 하는 배우지요. 극장을 찾은 관람객이 영화가 재미없으면 돈 아깝다고 할 것은 당연한 일이고 영화가 재미있으면 영화에 대한 칭찬을 하며 돈이 아깝다는 말을 안 하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제 경기를 보고 돈 아깝다는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할말을 잊은 필자에게 삼코가 바지를 걷어 정강이를 보여주었다. 이틀 전 경기에서 얻은 멍 자국이라며 아직 아프니 만지지는 말란다. 피부가 검은색이라서 잘 안보였으나 두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보니 그것은 분명 피멍이었다. 작은 키의 삼코가 한없이 크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삼코는 우리 나이로 32살이다. 이미 태국인 선수로서 전성기를 훌쩍 넘긴 노장중의 노장이다. “선수본인이 스스로 배우라고 생각하며 고통을 참는 연기를 할 수 있다면 태국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운동을 하는 한국선수들이 본인보다 더 큰 명성을 얻을 것”이라고 단언하던 그의 표정은 아주 진지했음은 물론이다.
최근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겠다는 집념으로 다시 링 위에 서기 시작한 삼코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든 후배선수들로부터 귀감이 되는 파이터였다. 훗날 그가 체육관이라도 차리게 되면 반드시 화환이라도 하나 보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KP프로모션 이사, 서울 태웅회관 총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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